조약이 체결되면서 물러나게 되었다. 발렌슈타인이 황제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이 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그가 전쟁에서 뛰어난 공을 세워서가 아니라 보헤미아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한 발렌슈타인이 황제를 대신해 자신의 비용을 들여 2만 4천만 명의 군인들을 모병하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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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팔렌조약으로 끝을 맺은 30년 전쟁은 16세기 유럽 내에서의 첨예한 갈등상황이 결국은 전쟁으로 표출되었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인 문제들을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라고 볼 수도 있다. 또 30년 전쟁으로 인해 기존의 유럽의 질서가 변하였고, 베스트팔렌의 조약으로 루터
종교개혁(Reformation)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중세 말, 유럽사회의 전면적인 변화과정 속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중세 가톨릭교회는 중세봉건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흥망성쇠를 같이 하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교황권의 세력 쇠퇴와 황제권의 신장과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는 선제후권을 프리드리히로부터 바이에른으로 전환하고 황제는 리가를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조약체결 이후 리가는 막시밀리안에게 병력의 징집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막시밀리안이 전쟁에 개입되게 되며 스페인군과 작센선제후국 군대도 황제 편에서 싸우고 교황을 이를
독일종교개혁의 시작
1500년대 초 로마의 교황청은 베드로 성당의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에서 면죄부를 팔고 있었으며 이 때 할버슈타트(Halberstadt)와 마그데부르크(Magdeburg)의 주교 알브레히트(Albrecht)가 마인즈(Mainz)의 대 주교가 되었다. 알브레히트는 브란덴브루크 왕가